
호주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집 살 생각 없어?"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시드니 집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저는 솔직하게 "지금은 엄두가 안 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지인이 "그럼 리츠는 알아?" 라고 했습니다. 몇 만 원으로 건물주가 되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물론 진짜 건물주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의 핵심 수익, 즉 임대 수익과 자산 가치 상승을 소액으로 간접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리츠가 탄생한 이유
부동산 투자의 가장 큰 문제는 진입 장벽입니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수억 원이 필요합니다. 대형 상업용 빌딩이라면 수백억, 수천억이 필요합니다. 일반인이 이런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리츠(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많은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서 부동산을 사고, 거기서 나오는 임대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이 리츠를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시켜서 소액으로도 사고팔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처음 도입됐고, 한국에는 2001년에 도입됐습니다. 호주에서는 A-REITs라고 부르며 꽤 오래전부터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리츠는 어떻게 돈을 버나
리츠의 수익 구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임대 수익이 첫 번째입니다. 리츠가 보유한 건물에서 임차인들이 내는 임대료가 리츠의 주요 수입원입니다. 이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합니다. 법적으로 리츠는 과세 소득의 90% 이상을 배당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리츠는 다른 주식보다 배당 수익률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자산 가치 상승이 두 번째입니다. 보유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리츠 주가도 오릅니다. 부동산 직접 투자와 마찬가지로 시세 차익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도 호주에서 처음으로 A-REITs에 소액 투자했을 때, 분기마다 배당금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배당주와 부동산의 장점을 동시에 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억 원이 필요한 부동산 투자를 몇 백 달러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리츠의 종류
리츠는 어떤 종류의 부동산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집니다.
오피스 리츠는 업무용 빌딩에 투자합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오피스 수요가 줄어 오피스 리츠가 타격을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류·산업 리츠는 물류센터, 창고, 공장 등에 투자합니다. 이커머스 성장과 함께 물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가장 강세를 보인 리츠 유형입니다.
리테일 리츠는 쇼핑몰, 백화점 등 상업 시설에 투자합니다. 역시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쇼핑 확대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주거 리츠는 아파트 단지나 임대 주택에 투자합니다. 호주처럼 임대 수요가 강한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냅니다.
데이터센터 리츠는 최근 AI 붐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유형입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리츠의 장점과 한계
부동산 직접 투자와 비교해서 리츠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소액으로 시작할 수 있고, 주식처럼 언제든 팔 수 있어서 유동성이 높습니다. 여러 리츠에 분산 투자하면 지역과 유형 모두 분산할 수 있습니다. 직접 건물을 관리하는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리츠 가격이 내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츠가 부동산 매입을 위해 대출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비용 부담을 높이고, 동시에 투자자들이 리츠 배당 대신 안전한 채권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2년 금리 급등 시기에 많은 리츠가 주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또 부동산 경기 영향을 직접 받습니다. 공실률이 올라가면 임대 수익이 줄어들고, 이는 배당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의 리츠
한국에서는 맥쿼리인프라, SK리츠, 롯데리츠, 신한알파리츠 등이 상장되어 있습니다. 국내 증권사 계좌에서 주식처럼 살 수 있습니다. 배당 수익률이 4~6% 수준인 상품들이 많습니다.
호주에서는 Scentre Group(쇼핑몰), Goodman Group(물류), Dexus(오피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호주 A-REITs는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깁니다. 남편도 포트폴리오에 Goodman Group을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는데, 물류 수요 증가와 함께 꾸준히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리츠로 시작하는 부동산 투자
수억 원이 없어도, 대출을 받지 않아도, 건물 관리를 직접 하지 않아도 부동산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츠는 개인 투자자에게 의미 있는 선택지입니다.
물론 리츠가 부동산 직접 투자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실거주 목적의 집을 사는 것과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성격의 자산을 갖고 싶을 때, 소액으로 분산 투자하고 싶을 때 리츠는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저도 리츠를 처음 알았을 때 "이게 있는데 왜 아무도 얘기 안 해줬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값 이야기를 매일 하면서도 리츠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동산 투자의 문턱을 낮춰주는 리츠, 한 번쯤 진지하게 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