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 계산대 앞에서 영수증을 보다가 멈칫한 적이 있다. 분명히 지난달과 비슷한 것들을 담았는데, 찍히는 숫자가 달랐다. 착각인가 싶어서 지난달 영수증을 꺼내봤다. 착각이 아니었다.
호주에서 생활한 지 꽤 됐지만, 요즘처럼 물가를 피부로 느낀 적이 없었다. 비슷한 품목, 비슷한 양인데도 장볼 때마다 예전보다 20% 정도는 더 쓰고 있다. 예전에는 마트에서 세일 스티커를 붙인 상품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현저히 줄었다. 마트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에 3주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코로나 이전에 느끼던 "한국은 호주보다 싸다"는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외식 비용은 호주나 한국이나 비등하다는 느낌이었다.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이제는 어디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다.
처음 이 변화를 느꼈을 때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소비를 늘린 것도 아니고, 생활 방식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지출이 늘어나고 있었다. 모기지 상환액도 금리 인상과 함께 조금씩 올랐다. 한국의 부모님 상황도 마음에 걸렸다. 사업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멀리서 걱정만 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 금리, 환율, 세계 경제 — 을 붙잡고 불안해하는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실제로 바꾼 것들
거창한 재테크 전략이 아니다. 아주 작고 구체적인 습관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쌓이면서 실제로 지출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① 장보기 전 리스트 작성
마트에 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적어간다. 리스트 없이 가면 눈에 보이는 것에 손이 간다. 리스트가 있으면 그것만 사고 나온다.
② 가격 비교 후 구매
큰 금액의 물건은 최소 두 곳 이상 가격을 확인한다. 번거롭지만 같은 제품을 10~20%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③ 점심 도시락 싸기
외식비 중 점심이 가장 통제하기 쉬운 부분이다.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서 한 달 외식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 건강도 덤이다.
④ 구독 서비스 정기 점검
3개월에 한 번씩 카드 명세서에서 구독 항목을 확인한다. "지난달에 실제로 썼는가?"가 유일한 기준이다. 쓰지 않은 것은 바로 해지한다.
사실 이 중 어느 것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들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물가가 오르고, 모기지 상환액이 늘고, 한국 가족 걱정까지 겹치니 그 거리를 좁히게 됐다. 위기가 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된 셈이다.
눈앞이 아니라 멀리 보기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패닉 — 지출을 무조건 줄이고 현금을 쌓아둔다. 다른 하나는 체념 — 어차피 힘드니까 지금 즐기자, 라는 식으로 소비를 늘린다. 둘 다 이해가 되지만, 둘 다 나는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당장 눈앞의 숫자에 흔들리기보다,
5년 뒤의 내 모습을 기준으로 오늘을 결정한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조정'이다. 소비를 적절히 줄이되, 아낀 돈은 통장에 묵혀두지 않고 자산을 만드는 데 쓰려고 한다. 남편이 관리하는 주식 계좌, 트러스트, 슈퍼애뉴에이션 — 나는 이 구조를 처음엔 잘 몰랐지만, 같은 수입으로 자산 증가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배웠다. 투자는 완벽하게 이해한 뒤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알아가면서 동시에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금리와 물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소비 습관, 내 저축률, 내 투자 방향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이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지금 시대를 버티는 데 가장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한다.
두 나라를 살면서 배운 것
호주와 한국, 두 나라에 걸쳐 생활하다 보면 경제를 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뉴스로만 접하던 금리 인상을, 호주에서는 내 모기지 명세서로 직접 경험한다. 호주에서는 추상적으로만 느끼던 환율의 영향을, 한국에 송금하면서 구체적으로 체감한다.
작년 한국 방문에서 느낀 물가 충격도 마찬가지다. 호주에서 비싸다고 느끼던 외식비가, 서울에서도 비슷하게 나왔을 때 — 이건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전 세계가 같은 파도를 맞고 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 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
결혼 당시 환율이 좋아서 한국으로 보낸 돈이 예상보다 컸던 날도 있었고, 작년처럼 900원대 환율에 몇 번씩 추가 송금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금리가 올라 매달 갚는 모기지가 늘어난 것도, 한국 부모님의 사업 이자 부담 걱정도 — 모두 같은 흐름 안에 있는 이야기다.
그 흐름을 이해하려고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 블로그가 그 기록이다. 경제 전문가의 글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함께 버티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
물가·금리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줄일 것은 줄이되, 만들 것은 만들어가는 것. 위기를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위기를 계기로 습관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도시락 하나가 한 달 지출을 바꾸고, 리스트 하나가 불필요한 소비를 막는다. 작아 보이는 이 습관들이 쌓이면, 5년 뒤의 내 재정 상황은 지금과 달라진다.
완벽한 재테크 전략이 없어도 괜찮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 하나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 이 시대를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