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에 살면서 처음으로 부의 불평등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시드니에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습니다. 항구 근처 고급 주택가와 제가 살 수 있는 외곽 지역 사이의 집값 차이가 수억 원이 아니라 수십억 원이었습니다. 같은 도시, 같은 나라인데 이렇게
다른 세계가 공존한다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비싼 동네 집값은 더 빠르게 오르고, 저렴한 동네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오릅니다. 이미 자산이 많은 사람이 더 빠르게 부를 축적하는 구조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 아파트와 지방 아파트의 가격 차이는 10년 전보다 훨씬 더 벌어졌습니다. 이게 단순히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생기는 격차가 아니라는 걸, 피케티라는
경제학자가 데이터로 보여줬습니다.
피케티의 핵심 주장: r > g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경제학자로, 2013년 출판한 『21세기 자본』에서 수백 년의 역사 데이터를 분석해서 부의 불평등이 왜 구조적으로 심화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단순한 공식 하나입니다.
r > g
r은 자본 수익률, g는 경제 성장률입니다. 자본이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자본 수익률은 연 4~5% 수준이었고 경제 성장률은 1~2% 수준이었습니다. 처음에 자산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집니다. 자본이 스스로 자본을 낳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공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수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평등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만 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데이터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겠습니다.
A씨는 10억 원의 자산이 있습니다. 연 5%로 불어나면 1년 후 5천만 원이 그냥 생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요.
B씨는 자산 없이 월급만 받습니다. 연봉이 3% 올라서 3천만 원이었던 연봉이 3,090만 원이 됩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90만 원이 늘었습니다.
A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5천만 원, B씨는 열심히 일해도 90만 원. 이 차이가 매년 반복되면 두 사람의 격차는 어떻게 될까요.
이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불평등의 확대가 개인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자본이 노동보다 빠르게 불어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건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저축하는데도 자산이 있는 또래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걸 느끼면서였습니다. 부모님 세대에서 집 한 채를 물려받은 친구와 그렇지 않은 저 사이의 출발점 차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잡기 어렵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2020년 양적완화가 불평등을 어떻게 심화시켰나
피케티의 이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2020년 코로나 이후 양적완화입니다.
연준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시장에 풀었습니다.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주식 시장과 부동산으로 몰렸습니다. 2020~2021년 미국 주식 시장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호주와 한국의 집값은 1~2년만에 20~30%씩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건 이미 자산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집이 있으면 집값 상승으로 수억 원이 불었습니다. 주식이 있으면 포트폴리오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비트코인을 갖고 있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반면 자산이 없고 월급만 받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집값이 올라서 내 집 마련이 더 멀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생활 물가가 올라서 실질 구매력이 줄었습니다. 양적완화가 경기를 살리는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킨 겁니다.
저도 이 시기에 호주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집을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1년 사이에 집값이 너무 올라서 목표 금액을 계속 올려야 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은 그 상승분만큼 자산이 불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도시에서 어떤 사람의 자산은 불고 어떤 사람의 목표는 멀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구조가 불공평한 이유
저는 여기서 솔직하게 비판을 하고 싶습니다.
자산이 불어나는 건 개인의 노력이 아닙니다. 집값이 오른 건 집주인이 뭔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주식이 오른 건 그 주식을 사둔 사람이 특별히 영리해서가 아닙니다. 중앙은행의 정책, 도시 개발 계획, 인구 이동 같은 외부 요인으로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겁니다. 그런데 그 혜택은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돌아갑니다.
반면 월급 노동자가 받는 소득은 온전히 그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팔아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득의 증가 속도는 자산 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할수록 상대적으로 더 뒤처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더 불공평한 건 이 자산이 다음 세대로 상속된다는 점입니다. 자산이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처음부터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상속받은 자산이 또 불어나면서 격차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집니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보다 어디서 태어났느냐가 경제적 성공을 더 크게 결정한다면, 그 사회는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 없습니다.
피케티 본인도 이 문제의 해법으로 누진적 자본세, 즉 자산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 주장은 당연히 자산가들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하지만 그 반발 자체가 이 제안이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피케티의 논리가 불편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현실적입니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자본 수익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자본 수익 구조를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것입니다.
주식, ETF, 배당주, 부동산처럼 자본 소득을 만들어주는 자산에 소액이라도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단순한 재테크를 넘어서, 불평등한 시스템 안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됩니다.
물론 이게 구조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을 따라잡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는 상속세 강화, 자본이득세 현실화, 부의 재분배 정책 같은 제도적 해법이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시스템의 불공평함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마무리
부의 불평등은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자본이 노동보다 빠르게 불어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이걸 이해하면 "나는 왜 열심히 하는데 자산이 안 모이지?"라는 자책에서 벗어나서,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 수익 구조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과,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