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는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월급 인상률은 이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업종에 따라 임금 수준이 천차만별인 현실에서, 임금은 과연 어떤 원리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2009년 30대 그룹의 임금 삭감 사례를 통해 노동시장의 특수성과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살펴보겠습니다.
노동시장의 특수성과 임금 결정 구조
경제학적으로 임금은 노동에 대한 가격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노동의 수요곡선은 y축을 노동의 가격, x축을 노동 고용량으로 둔 그래프상에서 우하향하는 곡선으로 나타나며, 공급곡선은 우상향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임금이 높아지면 노동자는 쉬기보다는 더 일하려 할 것이고 이에 따라 노동 공급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생산요소 시장의 하나로 생산물 시장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업이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로, 가계는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로 나타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을 동결한 사례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잘 보여줍니다. 노동의 가격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결정되기보다는 노동의 수요자인 기업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실제로 현실의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단순한 시장원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의 하방경직성입니다. 한번 오른 임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르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내려야 하는데, 임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산요소 시장에서 노동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소득분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이러한 성격은 임금이 단순히 시장원리에 의해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는 월급이 단순한 상품 가격이 아니라 개인의 생계와 직결되는 민감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차별 전략과 소비자 분류 메커니즘
시장에서 동일한 상품이 서로 다른 가격으로 판매되는 현상은 기업의 가격차별정책으로 설명됩니다. LG텔레콤이 10대 청소년 가입자를 위한 'OZ 링스마트', 'OZ 링친구문자 프리', '링친구문자 프리' 요금제를 출시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청소년과 노인이 쓰는 통화와 성인이 쓰는 통화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생산비용이 다른 것도 아닌데, 청소년과 노인의 요금은 성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싼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격차별은 똑같은 상품을 여러 가지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기업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는 한 가지 가격으로 상품을 팔 때보다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소비자를 일정 기준에 의해 그룹으로 분류하여 가격을 달리 매깁니다. 소비자를 가르는 기준으로는 보통 연령이나 소득과 같은 개인적 특성, 판매지역, 주중과 주말, 성수기와 비성수기 등이 있습니다.
통신요금은 청소년, 성인, 노인에 따라 요금이 다르고, 철도요금은 주말과 주중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비행기나 콘도 요금은 주말과 주중뿐 아니라 성수기냐 비성수기냐에 따라 다르며, 영화요금은 조조와 낮 시간이 다르고, 청소년과 일반이 다릅니다. 이러한 가격차별이 가능한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업이 생산물에 대해 시장에서 가격을 통제할 만한 힘인 시장지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소비자 그룹을 최소한 두 개 이상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구분되는 소비자 그룹의 탄력성은 각각 달라야 합니다. 셋째, 재판매가 불가능해야 합니다. SKT, LGT, KTF 세 업체로 제한된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에서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기 때문에 연령별 가격차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경제현상을 좌우하는 복합적 변수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며 상승해 왔습니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그에 따라 임금도 동반 상승한다는 의미이고, 둘의 상승률은 서로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됩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에는 노동생산성보다 높은 실질임금의 상승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는 중동 건설 붐과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속도로 증가했고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노동의 가격이 올라간 것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임금 상승은 시장원리보다는 경제 외적인 노동운동 활성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는 임금의 결정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임금의 결정에는 경제상황, 제도와 사회 여론, 노동조합의 대응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도 노동은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한 명의 노동자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출생한 이후에 약 20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합니다. 즉, 노동의 공급 기간이 길어 가격인 임금에 의해 탄력적으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현상은 당장의 노동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노동 공급의 저하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시차는 노동시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라서 노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임금이 줄어든다면 임금삭감과 같은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장이나 역사적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경제라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 판단하기에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제도적 요인, 사회적 합의, 정치적 상황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경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교차점을 찾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노동시장의 특수성, 가격차별의 메커니즘, 그리고 다양한 경제 외적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현실 경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월급 수준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듯 보이는 현상도, 이러한 복합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임금은 어떻게 결정될까?외 1 / 전대원 신장고 교사, 유성임 KDI 경제정보센터: https://eiec.kdi.re.kr/material/clickView.do?cidx=1001&click_yymm=200904&p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