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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의 유래와 미래 (역사, 월세 전환, 주거 사다리)

by Moneymoayo 2026. 3. 2.

한국의 전세제도
한국의 전세제도


유학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집을 구하려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저는 한국처럼 전세로 집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현지 부동산 중개인은 "보증금 없이 매달 집세를 내는 게 기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한국의 전세 제도가 얼마나 독특한 시스템인지를요.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세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가 청년층과 서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 제도, 그 시작은 조선시대부터

전세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한국만의 주거 시스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라는 유사 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 임대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에 불과합니다(출처: 국토연구원). 여기서 안티크레티코란 임차인이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기고 월세 없이 거주한 뒤, 계약 종료 시 전액 돌려받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전세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보편성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독특한 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학계에서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 '전당(典當)' 제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입니다. 전당이란 논밭이나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재물을 빌리던 관습으로, 19세기 무렵 가사전당(家舍典當) 형태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채무자가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되찾아오는 '환퇴(還退)' 제도에서 비롯됐다는 견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견해인 '세매(貰賣)' 유래설이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주택금융연구원 최영상 연구위원이 승정원일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742년 영조 시대 기록에 이미 세매 관습이 등장합니다. 세매는 목돈인 '세전(貰錢)'을 받고 집을 빌려준 뒤,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는 방식입니다. 영조가 궁핍한 광성부원군 자손에게 400냥을 지원해 본가를 되찾아준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당시 세매가 상류층에서도 널리 활용됐음을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전세는 '가장 일반적인 가옥 임대차 방법'으로 기록됐습니다. 1912년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를 보면 "차주가 일정 금액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며 별도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 주택난이 심화되자 전세는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았고,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공포되면서 법적 보호 대상이 됐습니다(출처: 통계청).

월세 시대로의 전환, 2015년이 분기점이었다

전세가 한때 전체 임차 가구의 70%에 육박할 정도로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임차 가구 중 전세 비율이 67.2%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5년을 기점으로 월세가 전세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전세율(全貰率)이란 전체 임차 가구 중 전세 계약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합니다.

2020년 기준 전세 가구 비율은 39.9%까지 떨어졌고, 2023년에는 11.24%로 급락했습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의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보면 2024년에는 전세 36.8%, 월세 63.2%로 월세 우위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복합 요인이 있습니다.

전세 감소의 주된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부의 전세자금 대출 규제 강화로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짐
  • 실거주 의무 강화와 세제 규제로 갭투자 경로 차단
  •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 이후 보증금 미반환 우려 확산
  • 고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월세 선호
  • 신규 주택 공급 부족으로 전세 물량 자체 감소

저도 한국에 있을 때 부동산 투자 공부를 하면서 전세 제도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당시 많은 투자자가 전세금을 활용해 다른 주택에 재투자하는 '갭투자' 전략을 썼는데, 이는 목돈 없이도 부동산 자산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정부가 이런 투자 경로를 막으면서 신규 전세 매물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의 신광문 책임연구원은 "갭투자는 신규 전세 매물을 공급하는 주요 통로였는데 이 경로가 차단됐다"며 "전세사기 트라우마와 신규 주택 물량 감소가 맞물리며 전세 물량이 더욱 줄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세 감소가 청년층에게 미치는 영향

전세가 사라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역시 사회 초년생과 청년층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5' 보고서는 "2015년 이후 월세 우위 흐름은 경기 악화, 금리 상승, 전세사기 증가, 1∼2인 가구 급증 등 복합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임차 가구가 매달 더 큰 주거비 부담과 불안정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집을 마련하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주택 가격의 20%를 예치금(Deposit)으로 내지 않으면 주택보험료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디파짓이란 대출 승인을 받기 위해 미리 내야 하는 계약금을 의미합니다. 저와 남편은 시댁에서 함께 살며 생활비를 절약해 목돈을 모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젊은 부부는 5% 정도만 내고 높은 모기지 이자를 감당해야 합니다.

한국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전세는 목돈을 모아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는데, 이게 무너지면서 청년층은 아예 내 집 마련 기회조차 잡기 어려워졌습니다. 월세는 매달 나가는 고정비용이기 때문에 저축 여력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자산 축적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전세 제도는 완전히 사라질까요? 신광문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감소세가 지속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정 수요에 기반해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목돈이 들어가는 국내 주택시장 특성상 전세는 여전히 무주택자들에게 가장 유효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다만 과거처럼 활성화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단순한 계약 형태 변화가 아니라 청년층의 자산 형성 기회 축소를 의미합니다. 정부는 전세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청년층이 주거비 부담 없이 저축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저처럼 외국에서 경험한 사람으로서 보면, 한국의 전세 제도는 분명 장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제도 자체를 되살리기보다, 월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거 사다리를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na.co.kr/view/AKR202602050818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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