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 세계적으로 패스트푸드점과 소매점에서 셀프서비스 터미널, 즉 키오스크의 도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입니다. 영국 Birkenhead에 위치한 Evoke Creative 같은 기업들은 행동과학(behavioural science)을 기반으로 설계된 터미널을 통해 기업의 매출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키오스크가 어떻게 우리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행동과학이 현대 소비문화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키오스크가 매출을 늘리는 행동과학의 원리
Evoke Creative의 창립자이자 최고제품책임자인 Dean Ward는 자사가 제작한 셀프서비스 터미널이 Travelodge, McDonalds, JD Sports 등 주요 프랜차이즈 체인의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터미널이 매출을 증가시키는 핵심 이유로 "타인에게 평가받는다는 심리적 부담의 제거"를 꼽았습니다. 점원에게 직접 주문할 때 느끼는 판단받는 느낌, 즉 "감자튀김을 추가하시겠습니까?" 또는 "사이즈를 크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부담을 느껴 거절하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런던 기반의 Vita Mojo에 따르면, 고객의 61%가 직원 대면 주문보다 터미널 주문 시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하며, 주문당 지출액이 최대 40%까지 증가한다고 합니다. Leon과 Honest Burgers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들이 이 기술을 도입한 이유입니다. 터미널은 고품질의 제품 이미지를 제공하여 고객이 메뉴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며, 주문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추가 상품 구매를 유도합니다. 시간적 여유와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고객들은 업셀(upsell) 제안에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맥도날드, KFC,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일반 푸드코트에서도 키오스크가 주문 시스템의 중심이 된 것을 목격한 경험은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를 실감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Baskin Robbins에서는 점원에게 직접 주문하려 해도 키오스크 사용이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40%의 매출 증가라는 명확한 성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기본편향과 권위편향: 일상 속 행동과학의 적용
행동과학은 단순히 키오스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The Behavioural Architects의 Ben Jones는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심리학적 도구를 활용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1940년대 미국 담배회사 RJ Reynolds는 "다른 어떤 담배보다 더 많은 의사들이 Camels를 피운다"는 유명한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권위편향(authority bias)'을 활용한 것으로, 전문가나 권위자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려는 인간의 경향을 이용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치약 광고에서 치과의사가 특정 브랜드를 추천하는 것, 운동선수가 스포츠 의류를 홍보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기본편향(default bias)'입니다. 영국에서 2012년 도입된 직장 연금 자동가입제도는 행동과학의 가장 성공적인 적용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제도 도입 이후 1천만 명 이상의 영국인이 추가로 연금을 저축하게 되었습니다. 기본편향은 이미 선택되어 있는 옵션이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의 벨소리나 컴퓨터 배경화면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본편향의 작동입니다.
Jones는 "우리는 매일 수천 가지 결정을 내리며, 기본 설정은 선택의 과부하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은퇴를 위한 저축처럼 미루기 쉬운 결정에서 기본편향은 사람들의 타성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지원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행동과학이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무 건전성과 사회적 복지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자동가입 연금제도는 채무불이행을 극복하고 국민들의 노후 준비를 돕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소비심리를 넘어선 행동과학의 긍정적 활용
행동과학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Leicester University의 Adrian North 교수와 동료들이 수행한 실험에서는 슈퍼마켓에서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과 독일 움파 음악을 번갈아 틀었습니다. 프랑스 음악이 재생되는 날에는 프랑스 와인 판매가 압도적으로 증가했고, 독일 음악이 재생되는 날에는 독일 와인이 더 많이 팔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객들이 음악의 영향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행동과학의 힘을 보여줍니다.
행동과학의 적용은 상업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WFP)은 튀니지에서 마케팅 기업 Ogilvy와 협력하여 Salla Salla라는 TV 드라마를 제작했습니다. WFP의 Takwa Khelifi는 "사실만 아는 것으로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며 "우리 모두 더 나은 것을 알지만, 더 나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행동과학을 활용하여 건강한 식습관과 음식물 쓰레기 감소에 대한 메시지를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Salla Salla는 방영 당시 튜니지 TV에서 네 번째로 많이 시청된 프로그램이었으며, 빵 소비가 22% 감소하는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브랜드, 정부, 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모두 행동과학을 활용하여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행동과학이 매출 증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더욱 유용하게 활용하여 사람들의 현명한 소비와 재무 건전성을 장려한다면 훨씬 더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동과학은 이제 현대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키오스크를 통한 매출 증가부터 연금 가입률 상승, 건강한 식습관 개선까지, 그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입니다. 단순히 소비를 부추기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돕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행동과학은 더욱 가치 있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영향 속에 살고 있으며, 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출처]
Why we buy more at self-service terminals/BBC News: https://www.bbc.com/news/articles/cy9y1wvq3pdo